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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얀마 쿠데타와 아웅산 수치
    _ today 2021. 2. 1. 13:41

     

    미얀마에 쿠데타가 발발했다.

    포털 메인에는 미얀마가 급등했고 이와 함께 아웅산 수치(아웅 산 수 치가 맞다고는 하지만 그냥 편한대로 가자)가 가택연금 상태로 구금되었다고 한다.

    이미 예상은 되었지만 미얀마 군부는 총선에서 대규모 투표 부정이 있다고 계속 비난해 왔다.(증거는 없지만 일단 부정이라고!)

    트럼프도 그러던데 요새 트랜드는 부정 선거인가.

    어쨌든 미얀마의 선거위원회는 이러한 군부의 주장을 거부했고 선거 부정을 둘러싼 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달 26일에 군부 대변인 쪼민툰 소장이 기자회견에서 "군은 헌법에 따라 법을 준수할 것"이라고만 말해서 정치적 긴장을 고조되었었다.(쿠데타 안하겠다는 말은 안했다.)
    여기에다가 민아웅흘라잉 참모총장 역시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면 헌법이 폐지될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요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군부의 쿠데타는 어느정도 준비가 되어왔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정말 부정선거가 있었는지 아니면 군부의 기득권 지키기인지는 좀더 지켜봐야겠다.

     

     

    이번 사태를 보면 아웅산 수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데 과연 국가고문의 위치가 맞았는가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는가 싶다.

    영국의 가정주부에서 갑자기 버마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로 급부상한 케이스로 8888항쟁 중에 갑자기 나타나 뛰어난 연설로 대중을 감동시킨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버마를 일당 통치하던 사회주의계획 당에 다원적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버마 민중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야당 세력을 망라한 민주국민동맹(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을 창설하고 그 의장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총선에서 476석 가운데 396석을 획득해 문민정부 2기를 출범시켰는데(현재 우리나라의 더불어민주당 이상으로 엄청난 비중이다.) 이 결과를 보면 군부 입장에선 이제 서 있을 곳이 없어졌다고는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여튼 1991년 수치는 민주화 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었고 한국에서는 2004년에 광주인권상을 받았다.

    그 밖에도 여기 저기서 기념비도 세워주고 상도 주고 했는데 권력의 정점에 선 그녀의 행보는 글쎄다였다.

     

    미얀마군과 로힝야족 무장세력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간 사상 최악의 유혈충돌로 사망자와 난민이 속출하는데도 수치의 행동은 묵인이었다. 

    수치는 로힝야족 사태에 대해 국제사회의 비판이 빗발치자 사태 발발 10여 일 만에 “(로힝야족 학살주장은) 엄청난 규모의 조작 정보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첫 반응을 내놔 국제사회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일각에선 “민주화 영웅 아웅산 수치가 맞나?”라는 의아한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남아공의 인종차별 철폐 운동으로 같은 노벨평화상을 받은 데스먼드 투투 주교는 “미얀마 최고 실권자 자리에 오른 정치적 대가가 당신(아웅산 수치)의 침묵이라면 확실히 대가는 아주 컸다”고 일침을 가했고,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도 지난 12일 “로힝야족 무슬림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범죄는 아웅산 수치의 승인에 따라 이뤄졌다”면서, 아웅산 수치를 향해 “그는 매우 잔인한 여자”라고 맹공을 가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미얀마 로힝야족 인종청소의 즉각 중단을 촉구하는 공식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하며 아웅산 수치에 대한 비판대열에 가세했다. 심지어 그동안 미얀마를 두둔하던 중국과 러시아까지도 규탄성명에 동참해 아웅산 수치를 비난하였고 국내에선 2018년 12월 광주인권상을 박탈당했다.

     

    여기서 궁금한 것.

     

    수치가 군부 때문에 로힝야족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아니면 모든 것을 쥐고 움직이는 수치로 인해 쫓기는 군부의 발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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